나의 갱신 – 로버트 맥체인

나는 다음 사항을 실행키로 작심한다.

1 최대의 영적 행복을 누리는 것

2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3 내 양심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항상 씻겨지는 것

4 항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5 정신과 의지와 마음이 이 세상에서 구속받은 죄인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분량만큼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적으로 닮는 것

은혜의 유일한 길 – 윌터 챈트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마치 그것이 옛 시대의 쓸모 없는 유물이요,

오늘날 그것을 지키면

죄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차단시키게 될 것이라고 하는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율법을 전도의 일차적인 수단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십계명을 전하는 것이

죄인에게 죄의식을 가르치고

그로 인해 그 안에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성 – 존 뉴턴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기질은 “겸손”으로 입증됩니다.

그는 자신의 질을 떨어뜨리는 더럽힘의 신속한 자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입은 자랑을 멈추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안목으로는 미천하며, 주께서 이러한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에 경탄합니다.

그는 은혜 아래에서의 자신의 책무와 사도들의 말을 꾸밈 없이 받아들이는 것과

자기 자신을 모든 신앙의 선진들보다 훨씬 덜하게 여기는 거대한 불균형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이 작은 자비조차 받을 수 없는 무가치한 이임을 느끼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커다란 복을 기대하고 주장합니다.

또한 심기우고 뿌리내려진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식 안에 평강이 있으며

자기 자신의 경험의 다양함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변화에 영향 받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와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의 진실은 복종에 의해 명백해 집니다.

그는 진실하고 진지하게 삽니다.

진지함이란 술취하지 않음보다 더 명징합니다.

물론 하나님께 대한 그의 태도는 모든 속세의 일에 적절함을 갖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꼼꼼하거나 미신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의 자유함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감사함으로 받을 좋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불필요하게 협소하지도 않고 엄숙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금욕주의자도 냉소주의자도 아니며 매일의 억제와 성찰을 유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모를 뒤얽히게 하고

열망을 약하게 하고 주를 경배할 기회를 제한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경계합니다.

만약 주의 섭리가 변화를 인도하신다면 그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는 천국의 시민으로써 이방인이요 순례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은 여행중에라도 집의 환경과 다른 불편한 요소들을 위로하며 지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외형적인 것에 대해 지나치게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심성은 태양을 악한 자에게나 선한 자에게나 고루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고루 내리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본보기는 박애심의 습성을 그에게 형성시키십니다.

그의 호흡은 선한 영이며,

다른 이들의 양육에 유용할 모든 기회를 기뻐하며 당짓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이의 불행을 가엾게 여기며 완화하려 합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느끼며, 많은 사함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그를 사할 준비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오만하지 않으며, 흠잡지 않으며, 쉽게 성내지 않으며

쉽게 화해하는 것은 예수의 발 아래서 유순함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안목으로 보아 그의 고백의 어떤 작은 부분도 그의 혀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진실과 선함과 정결함의 법이 그의 입술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싫어하며 이웃을 해롭게 하는 중상모략을 날조하지 않습니다.

그의 대화는 순수하고 공격적이지 않으며, 말로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그의 말은 은혜로우며 그를 에워싼 모든 것에 평화와 교화를 주기에 적당합니다.

그의 최선의 경배가 결함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음을 발견하고 고백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무익한 종으로 여기며, 자신의 안목을 낮추고,

자신의 모든 희망과 위로와 힘을 예수님에게서 이끌어 내며,

자기가 알고 영접하고 믿어 영혼을 의지하는 예수께

육신의 확신과 영의 경배를 드립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우리가 이제 막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까?

당신이 몇 주 동안 구명보트 위에서 표류하다 해군 함대에 의해 방금 구출되었다고 상상해보라.

아니면 탄광이 무너져 깊은 지하에 갇혀 있다가 이제 막 구출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또는 9개월 동안 말기 암으로 고통 받다가 의사에게서“신기할 따름입니다 암 세포가 모두 없어졌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안도와 기쁨의 몇 시간 동안 당신이 얼마나 인내하고 친절하고 관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이제 이러한 상상에다 덧붙여 (이제는 상상이 아니라 성경적 계시가 필요할 때이다)

당신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당신과 내가 고통과 박해, 질병과 죽음, 그리고 지옥 외에는 그 무엇도 얻을 자격이 없음을 깊이 묵상해보라.

하나님께 이러한 사실에 깊이 침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엡 2: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아 다 죄 아래 있으며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있다(롬 3:9, 19).

우리 죄의“삯”은 영원한 죽음이다(롬 6:23).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

왜냐하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신 27:26).

우리의 본래의 생각은“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 8:7).

우리는“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다(엡 2:12).

우리는“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운명이다(마 8:12, 25:30).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과 유황 속에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며”“밤낮 쉼을 얻지 못할”수밖에 없다(계 14:11).

그러므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에 더해,

그럴 자격이 없기에 당혹스러운 놀라움과 상한 마음으로 기뻐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엄청난 자비가 아낌없이 주어진 것이다.

이제 당신의 비참한 상황을 다음의 관점으로 바라보라.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불행은, 우리에게 당연했을 운명보다 얼마나 나은 것인지.

우리가 만나는 가장 커다란 고통과 재난은, 우리가 마땅히 당해야 할 불행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

인간은 커다란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가축은 죽고, 식물은 시들며, 집은 불타고 안락했던 삶에서 벗어나 가난하고,

비참하고, 상처받은 상태로 내려올 수 있다.

분명 너무나 참기 힘든 고통이겠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불평할 이유가 있는지.

우리에게 정해진 영원한 멸망에 비하면 그 고통이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