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믿는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구원주로 나타내셨음을 믿는다’고 합니다.
아주 정확하고 좋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을 정확히 안다고 해도 경건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지식이 아니라 경건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칼빈은 정의하기를 ‘사랑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경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둘 중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경우….마귀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아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하나님을 두려워는 하지만 절대로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마귀가 가진 두려움이란 앞으로 당할 심판에 대한 두려움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두려움은 다른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이란 하나님의 공의와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선악간의 심판도 전부 다 받아 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생활, 십일조를 잘한다 할지라도 개인적인 경건의 삶이 없다면….
이것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쓸데 없는 질문과 공상을 늘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를들면‘하나님은 물인가? 나는 어머니의 아들인데 하나님은 누구의 아들인가?’하면서…
우리가 씨름해야 하는 것은 공허한 질문과 공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것은 ‘우리와 관계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여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하고 공허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경건한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공허한 질문과 공상이 마음 속에서 불현듯 생기더라도 이를 과감히 차단하며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대로만 믿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경건한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위엄을 존중하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건이 결합된 곳에만 참된 신앙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칼빈은 ‘경건의 열매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참된 예배와 헌신이 바로 경건의 열매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건을 갖춘 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찾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은혜와 도전을 받기를 바랍니다.